서울 맛집 로드 제9장
예스러움과 힙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곳.
을지로 4가역에서 나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긴 웨이팅이 있는 이곳은 바로 우래옥입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6.25 전쟁 당시 어린 나이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남쪽으로 피신을 오셨습니다.
따라서 어릴 적에 먹었던 이북 음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있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는 꿩냉면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맛봤던 평양냉면의 시작이었습니다.
뭔가 밍밍한 국물에 녹아든 낯선 고기의 향.
어릴 때는 도전하기 쉽지 않은 메뉴였지만 할아버지께서 워낙 좋아하시기에 기호에 따라 식초와 겨자를 적절히 섞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저도 그 오묘한 맛에 익숙해져 정말 뜬금없이 생각이 나곤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제 친구는 냉면 냉면~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평양냉면을 시도해 보지 않은 친구이지만 주변의 평가 때문에 평양냉면을 입에도 대기 싫어하는 친구였습니다.
을지로에는 유난히도 냉면 집이 많습니다.
나중에 포스팅할 예정이지만 오장동 함흥냉면과 우래옥이 대표주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장동 함흥냉면은 앞에 호박엿이 정말 맛있습니다)
친구는 함흥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졸랐지만 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이 친구에게 평양냉면을 먹여 평양냉면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바꿔놓고자 했습니다.
카페 안에서 친구에게 잠시 기다려달라 하고 얼른 우래옥으로 뛰어가 기나긴 줄 끝에 있는 키오스크에 웨이팅을 걸어놓았습니다.
저희의 순번이 다가오자 저는 잽싸게 친구를 납치해 우래옥에 내려놓았습니다.
역시나 부정적인 친구의 반응이었지만 웅장한 내부 인테리어와 굉장한 웨이팅을 보고선 조금은 안심이 되는듯한 친구였습니다.
저희는 2층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고 메뉴판을 확인했습니다.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냉면 치고는 굉장히 비싼 가격이었고 다른 메뉴들도 굉장히 가격대가 있었기에 친구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를 데려온 책임감에 과감히 제가 쏘겠노라 말했고 친구에게 먹고 싶은 것은 다 시키라고 말합니다.
(친구는 소식좌입니다)
친구는 냉면이 입맛에 안 맞을 것에 대비해 불고기를 시켰습니다.
(벌써 다 시키라고 한 거 후회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냉면과 불고기가 세팅되었고 불고기는 특이하게 불판 가쪽에 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짙지만 맑은 육수의 냉면.
기대라고는 하나도 없는 친구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합니다.
저는 냉면을 한 번도 자르지 않고 식초 겨자도 넣지 않고 우선 국물부터 들이켭니다.
평소에 평양냉면 마니아라면 기대하는 육수의 맛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느낀 첫인상은 자극적이다였습니다.
저는 서울 내애서 이름 들으면 다 알만한 평양냉면 맛집도, 마니아들만 아는 맛집도 모두 다 가본 입장으로써 확실히 이 집은 다른 곳들과는 달랐습니다.
이게 제가 바로 평양냉면을 처음 먹는 저의 친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입니다.
친구도 저를 따라 국물을 한번 마시더니 놀라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쭉 들이기는 친구의 입에서 희미한 미소가 퍼집니다.
'맛있다!'
친구가 제게 던진 한마디에 저는 마음을 놓고 냉면을 즐기기로 합니다.
자르지 않은 면 위로 배 고명과 백김치, 고기 고명을 함께 얹어서 크게 한입 먹습니다.
입안으로 휘감겨 들어오는 약간은 거친 메밀면의 식감 뒤로 같이 들어온 깊은 소고기 육수의 육향과 간장의 맛.
그리고 뒤이어 씹하는 아삭한 백김치와 양념을 다 빨아들인듯한 달콤하고 짭조름한 배가 제 입안을 채워줍니다.
면의 식감과 고명들의 조화가 참으로 기가 막힐 정도로 찰떡입니다.
간혹 너무 자극적이거나 평소에 먹는 평양냉면과는 달라서 선호하지 않으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에게는 아주 맛있는 평양냉면입니다.
정신없이 냉면을 먹던 중에 눈앞에 익어가는 불고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눈에 봐도 부드러워 보이는 고기가 자글자글 알맞게 익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점씩 집어 입안에 넣었습니다.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달달한 양념과 그 양념에 너무도 잘 맞는 부드러운 고기.
한 두 번 씹으면 없어지는 식감에 둘 다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 기세를 이어 쌈 위에 고기 두 점과 김치 양념장을 넣고 잘 싸서 또 한입.
냉면에서 느낄 수 없던 무언가를 채워주는 완벽한 조화.
가격대가 좀 비싸지만 이 불고기는 정말 추천드리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
냉면 양이 정말 많아 나름 소식좌인 저에게는 국물까지 다 먹기에는 조금의 무리가 있었지만 저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릇의 밑바닥을 보고 있었습니다.
친구도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어있는 그릇을 슬며시 보여줍니다.
최고의 시원함, 최고의 맛, 최고의 무언가 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익숙한 듯 친근한 맛에 이끌려 가게 되는 이곳.
바로 을지로에 위치한 우래옥입니다.
별점: ★ ★ ★ ★ ☆ (4.1)
1. 위치
서울 중구 창경궁로 62-29
2. 가격대
추천 메뉴:
평양냉면 - 16,000원
김치말이냉면 - 16,000원
불고기 -37,000원
3. 영업시간
11:30 ~ 21:00 (월~일)
(라스트 오더 20:30)
4. 연락처
02-2265-0151